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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울의 시사 정보/국제 정보

스리랑카 테러는 왜 발생했을까?(feat. 종교 갈등의 역사)

부활절이었던 4월 21일 스리랑카에서 연쇄 폭발 테러가 발생했다.

위 사진은 이번 테러와 관계가 없는 사진입니다.

스리랑카 당국의 보고에 따르면 현재 사망자 수가 기존 발표보다 늘어나서 최소 310여 명인 것으로 드러났다. 또한 500여 명이 다쳤다고 하니, 앞으로 더 사망자가 늘어날 수도 있다.

이 테러는 스리랑카의 가장 큰 도시이자 행정 수도인 콜롬보에서 현지 시각으로 오전 8시 45분 정도에 발생했다. 첫 번째 폭발은 부활절 예배를 드리려고 많은 사람들이 모인 성 앤서니 성당에서 발생해서 상당히 안타깝다. 이후 두 번째, 세 번째 폭발 역시 다른 도시의 교회들에서 발생한 것을 보면 기독교를 겨냥한 테러일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종교적인 이유가 이 테러의 원인이 아닐까 짐작해 볼 수 있다.

용의자 지목된 40명이 체포 완료되었고, 신원은 모두 스리랑카인으로 밝혀졌다.

위 사진은 이번 테러와 관계가 없는 사진입니다.

사건 발생 직후 경찰들의 수사를 통해 용의자들이 속속 잡히기 시작했고, 현재 40명이 체포 완료되었다. 점점 테러 수사망이 좁혀져 가고 있기 때문에 이 테러가 왜 발생했고 그 주체는 누구이며 배후가 있다면 어떤 세력인지까지 정확하게 밝혀질 것으로 기대된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체포 완료된 용의자 24명의 신원이 모두 스리랑카인이라는 것이다. 스리랑카 국민은 2011년 인구 통계 자료에 따르면 싱할라족이 74.9%, 타밀족이 15.2%, 스리랑카 무어인이 9.3%, 말레이족이 0.2%, 버거인이 0.2%으로 구성되어 있다. 스리랑카 역사를 보면 민족 간의 갈등도 심하였기 때문에 자국의 국민에 의한 테러라는 점과 더불어서 민족 갈등이 원인일 수도 있다.

총 8회에 걸쳐서 발생한 폭발, 그중 3곳이 기독교(성당, 교회) 시설에서 발생했다.

위 사진은 이번 테러와 관계가 없는 사진입니다.

총 8회의 폭발은 3곳의 기독교 시설, 3곳의 호텔, 1곳의 게스트 하우스, 1곳의 일반 건물에서 발생했다. 그중 가장 관심 있게 볼만한 공통점은 바로 3곳의 기독교 시설인 성당과 교회에서 폭발이 발생했다는 것이다. 물론 관광객이 머무는 호텔과 게스트 하우스를 겨냥한 폭발도 있었지만, 이는 테러의 원인보다는 테러를 통해 세계의 이목을 끌고자 하는 의도가 엿보인다.

이 글에서는 테러의 원인에 대한 글이기 때문에, 주원인으로 지목된 종교 갈등과 역사에 초점을 맞춰 글을 쓰도록 하겠다.

실제로 스리랑카 정부 역시 이번 테러를 종교적 극단주의자들에 의해 발생한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그렇다면 어떤 종교 세력에서, 왜 기독교를 겨냥한 테러가 발생한 것일까?

이를 위해 스리랑카의 종교에 대해 한번 집고 넘어가 보도록 하자.

 

스리랑카의 종교 갈등이 테러의 원인?

위 사진은 이번 테러와 관계가 없는 사진입니다.

스리랑카는 2012년 기준으로 종교를 믿는 인구의 70%가 상좌부 불교, 12%가 힌두교, 9.7%가 이슬람교(수니파), 7.4%가 기독교(대부분 가톨릭)이다. 종교 인구 비율과 앞서 언급했던 민족 구성 비율을 보면 서로 비슷하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실제로 민족에 따라 믿는 종교가 차이가 발생한다는 것을 통계로 알 수 있다. 불교는 전체 인구의 74.9%를 차지하는 싱할라족이 많이 믿는 편이고, 힌두교는 15.2%를 차지하는 타밀족이, 이슬람교는 9.3%의 무어인이 많이 믿는 편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기독교는 특정 종족이 주도적으로 믿기보다는 여러 종족에서 조금씩 믿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왜 종교 인구 중 가장 적은 수를 차지하는 기독교를 겨냥한 테러가 발생한 것일까? 그 이유를 찾기 위해선 이제 스리랑카의 종교 갈등의 역사를 알아보아야 한다.

우선 스리랑카 인구 대다수가 믿고 있는 상좌부 불교는 애초에 스리랑카가 그 기원이고 발전된 종교이다. 우리가 흔히 소승 불교, 남방 불교 등으로 불리며 많은 동남아시아에서 믿는 그 불교가 바로 스리랑카가 기원인 상좌부 불교이며, 스리랑카는 상좌부 불교의 종주국의 지위에 있는 것이다. 그만큼 스리랑카에서 상좌부 불교의 위상은 실로 막강하며 오랜 역사 동안 스리랑카 대중 종교로써 그 자리를 차지해 왔다. 

그리고 인도랑 인접해 있던 터라 국가의 흥망성쇠에 따라 힌두교와 이슬람교의 영향도 많이 받게 되었다. 힌두교와 이슬람교의 경우 종교가 스리랑카의 민족, 문화와 함께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졌다 보니 상좌부 불교와 갈등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기독교에 비해서는 상황이 나은 편이다.

기독교는 대항해시대 시대 이후 들어오게 되었다. 16세기부터 포르투갈, 네덜란드, 영국에 의해 식민 정복이 되었던 스리랑카는 그 당시 실론이라고 불리었다. 식민 정부는 기독교 강제 정책을 펼쳤고, 그 과정에서 다른 종교에 대한 많은 기독교 교회의 만행이 자행되었다. 그 종류로는 승려 학살이나 사찰, 경전 훼손, 그리고 불교 가정 자녀의 출생 신고 거부 등이 있었다.

이러한 식민지 정부의 다른 종교에 대한 탄압은 스리랑카 사람들로 하여금 기독교에 대한 반감을 크게 불러일으키게 되었고, 1948년 스리랑카의 독립 이후 상황이 정반대로 일어나기 시작했다. 독립 전부터 찰만큼 찬 반기독교 정서가 독립 이후부터는 기독교 탄압으로 이어진 것이다. 사이가 좋지 않던 불교, 힌두교, 이슬람교도 기독교를 탄압할 때만큼은 같은 편이 되어 기독교를 괴롭히곤 하는 일까지 벌어지니 말이 더 필요 없을 것이다.

결국 원인은 뿌리 깊게 내려온 스리랑카의 반기독교 정서...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어느 세력이?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렇게 대놓고 테러 행위를 저지를 만큼 극단적일 수 있는 종교는 이슬람교다. IS와 같은 극단주의 이슬람교 세력이 국제적으로 테러 행위를 저지를 일은 어제오늘 일이 아닐뿐더러, 스리랑카 내부에서도 항상 기독교 탄압에 앞장서던 세력도 이슬람교와 힌두교 세력인 것을 보면 이는 거의 확실하다고 보면 된다.

스리랑카 정부에서는 이번 테러 사건의 배후로 내셔널 타우힛 자맛(National Tahuhit Jamat 이하 NTJ)을 지목했다. NTJ는 스리랑카의 이슬람 극단주의 단체이며, 이미 이번 테러가 발생하기 전에 외국 정보기관들이 이 단체가 테러를 저지를 것이라는 첩보를 전해 왔었다고 한다.

따라서 이번 테러는 스리랑카 정부가 이런 테러 조짐이 있었음에도 막지 못한 것이다.

너무나도 안타깝다.

 

테러가 발생할 것을 미리 알고 있었지만 왜 막지 못하였나?

이유는 여러 가지 있겠지만 여기에는 정치적인 이유가 있다. 스리랑카의 정부 체제는 이원 집정부제이지만 이를 표방할 뿐 대통령제와 비슷하게 운영되고 있는데, 이에 관해 얘기를 하자면 너무 길어지니 생략하도록 하겠다.

어찌 되었건 국가의 일인자인 마이트리팔라 시리세나 대통령과 이인자인 라닐 위크레메싱게 스리랑카 총리는 서로 정치적 라이벌로써 사이가 좋지 않다. 외국 첩보 기관에서 스리랑카 국가 첩보 기관에 경고를 수차례 보냈었지만, 스리랑카 정부는 이에 대한 방지 대책을 세울만한 여력이 없는 것이다. 대통령과 총리가 서로 권력 투쟁하기 바쁜 상황에서, 대통령은 섣불리 정치적 꼬투리가 잡힐만한 일을 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높다. 

체재가 건강하지 못하다보니 벌어진 일에 대한 수습 처리하기도 바쁘지, 어떤 일이 발생할 것을 예견하고 방지하고자 하는 능력이 거의 갖추지 못했다 생각하면 될 것 같다. 사실 어떤 국가적 위기를 대비하기 위해 방지 대책을 세우고 이를 실제로 예방한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다. 우리나라도 이와 비슷한 경험이 많았고, 앞선 사고로부터 배우며 다시는 같은 일이 발생하지 않으려고 노력할 뿐이다.

어쨌거나 좀 더 자세한 건 사건 조사가 더 이루어져야 알겠지만, 이번 테러 사건은 사전에 대비가 가능했던 일이었지만 그렇지 못했기에 인재라는 생각이 들어 더욱 안타까운 사건이라 생각된다.